안내를 찾으며 . .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나는 하고자 하는게 있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찾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특정 목적을 마음에 두고 3일 동안의 개인적 기도 수련회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신중하게 짜 놓은 이 행동 계획들을 은혜롭게 찢으셨다.
인생의 전환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다. 몇 달 전부터 나는 성령께서 내 삶과 사역의 방향을 바꾸고 계시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선교사로서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의 시간들을 포함해서 35년 동안 나사렛 교육 기관들에서 가르쳤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그 페이지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R’로 시작하는 단어를 마주하게 되었다. 은퇴(Retirement)! 그러나 그 단어는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 재초점 (Refocus). 그것은 나의 전환에 더 적합해 보이는 "R" 단어였다. 하지만 그 새로운 초점은 어떤 모습일까? 글쓰기? 지역 교회들에서의 설교사역? 다른 나라들에서 가르치기? 아니면 내가 아직 해 보지 않은 어떤 일?
나의 교수로서의 마지막 학기는 빠르게 지나갔으며 또한 가장 바쁜 학기가 되었다. 그리고 은퇴식이 찾아왔다. 축하리셉션들. 사람들의 프리젠테이션. 감사의 말. 감사의 메모. 책 정리. 파일 정리와 버리기. 나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좋은 확인들을 받았고 이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인생의 새로운 계절로 전환해야 했고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주님, 당신의 인도가 필요합니다.”라고 기도했다.
만남의 장소
수년 동안 나는 개인 기도 수련회를 떠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나 웬지 실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엔 시간적으로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보내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영성을 가르치는 친구 더그(Doug)에게 연락했다. 그는 내가 갈 수 있는 몇 군데 장소들을 제안 했고, 나는 자연 환경 속에서 개인의 고독한 시간과, 공동체 생활 규칙이 적절히 결합된 것처럼 보이는 '기도의 집'을 선택했다. 다행히도 나는 누군가에게 받은 개인 영성 수양회에 관한 책을 내 책장에서 발견했고, 그 책을 읽으며 수양회 시간동안 갖게 될 경험에 대해 준비했다.
수련 센터로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내 마음은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찼다. 나는 앞으로 며칠 동안 내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알기를 원했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나는 캔자스 시골의 곡물밭 사이 한가운데에 위치한 수련 센터에 도착했다. 작은 방에 가방을 풀어 놓은 후 나는 즉시 숲을 둘러 펼쳐 있는 산책로로 들어섰다. 그 길은 결국 나무들로 둘러싸인 명상의 그늘진 장소로 이끌었다. 그러자 곧 부드러운 비처럼 평화로운 느낌이 내게 임했다. 매끄러운 바위를 발견하고 그 위에 앉아서 나는 하나님께 이번 수련회에서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신지 믈어보았다. 나는 내 인생의 다음 시즌을 위한 그분의 인도를 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나는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다. “나는 네가 나의 인도를 구하기보다, 나를 구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아주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사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에서 특별히 독창적인 생각 중 하나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그 자리에서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방향제시를 원했었다. 나는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나에게 훨씬 더 큰 것을 주고 싶으셨다. 바로 당신 자신이었다. 그 순간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기쁨과 만족감을 느꼈다. 그 그늘진 바위 위는 영성 작가들이 말하는 “엷은 곳thin place”이 되었는데, 그곳은 땅과 하늘 사이의 가림막이 어느 정도 엷어지는 곳을 말한다.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의 임재에 흠뻑 젖게 되는 그런 곳 말이다.
변화된 초점
이 만남의 경험은 나의 수련회 전체의 초점을 바꾸어 놓았다. 미래를 알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아침 안개처럼 걷혀졌다. 나는 계획한 일정을 버리고 대신 일기를 쓰고, 영적인 독서를 하고, 예배 시간에 참여하고, 햇살 가득한 센터의 예배당에서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는 데에 집중했다. 나는 바람이 부는 곡식밭과 울창한 푸른 숲을 통과하는 길을 따라 오랫동안 산책하며 기도했다. 그러다 영적 성찰을 위한 장소인 이 수련 센터의 원장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내 인생의 전환기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음성을 들은 일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곧 나의 "성취 중심적" 기질에 충실하여 다시 글쓰기 프로젝트, 단기적 교수활동 등과 같이 이 새로운 삶의 계절에 포함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부 활동들에 대해 빠르게 그에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 . 원장은 내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는 “지금은 그런 생각들을 하지 마세요. 다음 달 동안, 또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당신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당신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말했다. “우리의 영적인 여정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놀아라’고 부르시며, 이에 그분과 함께 있기만 하면 될 때가 있습니다.”
“그와 함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그곳에서의 나의 시간은 단지 새로운 것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변화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나의 만남의 바위, 바로 나의 “엷은 곳”으로 종종 가보았다. 그러나 수련시간은 결국 끝난다. 큰 바위는 잘 이동시키기 어렵다. 나는 나의 방향 전환이 수양회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이제 내가 매일매일 거미줄에 얽매인 삶을 살아온 것과 같은 그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패턴
다음 한 달 동안 나는 그 원장님의 권고를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새로운 사역 직무에 대한 초청이 왔을 때 나는 “지금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새로운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 나는 그것을 미루었다(말씀드리지만, 그 말 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이전의 영성 일기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나의 여정의 각 단계에서 함께 하신 하나님의 끊임없는 신실하심에 놀라곤 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고독한 시간을 만들어 나가며, "생산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구했다. 물론 항상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생활 패턴은 확실히 달라졌다. 나는 '노는 것'을 배웠다.
이번 시즌은 새 초점으로 전환하는 길에 있어서 나를 새로운 장으로 이끌었다. 나는 준비 시간을 거쳐서 스페인 북부의 고대 순례길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일부를 걸었다. 다시 한 번, 내 초점은 행동보다는 존재에 집중되었다. 걷는 일의 도전과 함께 뉴스, 스포츠, 소셜 미디어로부터의 한시적 분리,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세계를 생각하는 시간, 여행 중에 함께 하게 되는 옛 또는 새 친구와의 동행 등, 모든 것들이 내가 하나님 임재 안에서 쉬는 법을 배우도록 도움을 주었다. 다시 한 번, 나는 어떠한 구체적인 안내를 얻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다.
좀 더 규칙적인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달라져 있었다. 몰아쳐지는 삶이 아니었다. 일을 성취하려는 것에 대한 강박이 전과 같지 않았다. 이 삶의 여정 중에 만나게 되는 동료 여행자들과의 관계에 더 잘 적응하고 있었다.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에 좀 더 편안함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일들도 일어났다. 거의 깨닫지도 못한 채, 나는 처음에 구하고 있었던 구체척인 인도를 받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새로운 사역의 기회들을 열어주시기 시작했다. 나는 지역 교회의 삶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되었다.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새로운 도서 프로젝트가 구체화되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맞추기 보다는 그 분에게 맞춰지고자 한 방향에 대한 나의 소망을 이루어주셨다. 차이점은 그것이 그 분에 대한 나의 더 깊은 알아감에서 흘러 나왔다는 것이다.
배우게 된 몇 가지 교훈들
몇 달 동안의 성찰의 경험을 통해 얻은 몇 가지 깨달음을 공유하려고 한다.
1. 하나님은 종종 “엷어진 곳thin places”에서 우리를 만나신다. 창세기 28장의 야곱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야곱이 바위를 베개 삼아 자고 있는 것을 본다. 그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와 천사들이 거기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꿈을 꾼다. 그는 깨어나며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깨닫지 못하였도다”(창세기 28:17)라고 선언한다. 그곳은 엷어진 곳, 예상치 못한 만남의 장소였다. 야곱은 자기가 자던 바위를 가져다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 그 곳을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다.
엷어진 곳은 수련회나 예배 시간, 또는 단순히 일상 생활 중에 발생할 수도 있다.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예기치 않게 나타났던 때와 장소를 생각해 보라. 나에게는 변화의 만남을 가져온 여러 곳이 마음에 떠오르는데, 가장 최근의 곳은 바로 그 수련원에서 나의 “벧엘” 바위이다. 이 엷어진 곳이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우리의 여정에서 전환점이나 또는 변화의 시간이 될 수 있다.
2.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데 초점을 맞추면, 인도하심은 따라온다. 처음에는 나에게 그것이 거꾸로 되어 있었다. 나는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존재”(그리스도 안에서의 나의 정체성)보다 “행위”(나의 기독교 봉사)를 앞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다른 패턴을 본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실 때 그들에게 “그와 함께 있도록” 임명하셨다(마가복음 3:14). 이것이 첫번째로 언급된 제자됨의 특징이었다. 마가는 계속해서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보내어 복음을 전파하고 귀신을 제압하는 권세를 가지게 하신다고 말하신다. 그러나 그 일은 그들이 그분의 임재로부터 떠나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의 시작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너희는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 예수님께서 “가서 증거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점에 유의하라. 그 대신 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정체성’을 부여하신다. ‘너희는 증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직 성령의 능력안에서만 그 정체성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을 약속하신다. 이제 사도행전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성령께서 교회가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선교 공동체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일을 드러내 주고 있다. 행함과 말함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정체성에서 흘러나온다.
3. 놀아도 괜찮다. 나는 '성취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생산성에 대한 압박감을 잘 알고 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세상에서 어떤 사역을 하는지를 통해 나의 사역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필요를 느끼곤 했다. 시간낭비나 비생산적인 행동은 칠판에 손톱을 대고 긁는 것처럼 내 본성을 거슬리게 했다. 이제 나에게는 노는 자유가 필요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산성 대신 현존으로, 근면함보다는 기쁨으로, 성취보다는 더 오래 머물도록 부르시는 그러한 삶의 계절들이 있다. 그것은 나의 은퇴 후 처럼 장기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 삶의 규칙적인 리듬의 한 부분이 되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은 노는 시간이다! 나는 전에 안식일에는 집안 일, 돈 지불, 이메일 답장 등 주중에 못한 일들을 이 때 처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곤 했었다. 나는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들고 하나씩 체크를 하며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식일을 기쁨의 날로 만들고, 하나님이 내 존재의 근원이심을 상기시켜 주는 생명을 주는 활동들로 가득 찬 날로 만들어 나가는 것을 배우고 있다. 정말로 기쁨이 충만한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시간이다. 나는 아무것도 성취할 필요가 없다!
4. 다른 사람들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숙한 사람에게 영적인 인도를 구한 덕분에 나는 하나님에게 받은 영감을 실천할 수 있었다. 그 수련원 원장은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 주었으며, 나에게 격려와 지지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트랙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 도전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나에게 하나님을 기다리는 새로운 방법, 즉 “놀이” 하는 것을 탐구해 볼 권한을 주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전체 기독교 공동체에게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라”(골로새서 3:16)고 권고하고 있다. 때로 우리에게는 여정의 동반자로 우리가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진심으로 우리에 대해 염려해 주는 그리스도인들 필요하다. 그들은 우리가 길 위의 어디쯤에 있는지 명확히 알려주며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도록 도움을 제공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길 위에 있는 낙담한 제자들에게 어떻게 찾아오시고 함께 길을 가셨는지 기억해 보라(누가복음 24:13-35). 처음에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이내 그가 줄곧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나눠준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영성 저술가인 제프리 트리스트램 Geoffrey Tristram은 “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어쩌면 누군가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우리의 비전을 새롭게 하여 주며, 우리를 다시 생명의 길로 안내하는 말씀을 들려주는 그리스도와 같은 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열린 마음으로 기대하라”고 촉구한다. 내 친구 루벤 웰치Rueben Welch도 말했듯이 "우리는 정말 서로가 필요하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이 새로운 장에 무엇을 쓰고 싶어하실지 예측할 수 없다. 그 이야기는 놀라운 방향으로 바뀌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알고 있다. 내가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 인도하심이 따라온다. 그리고 나는 부활하신 그 분이 그 여정에서 나와 함께 계실 것이며, 내 옆에서 걸으실 뿐 아니라, 내 앞서 가시며 그 길을 예비하실 것을 확신한다.
딘 플레밍Dean Flemming은 미드아메리카 나사렛대학의 신약학과 선교학 분야의 명예 은퇴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