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를 향한 부르심에서 우리 자신을 보다
주님은 “나는 애굽에 있는 나의 백성의 고난을 분명히 보았다. 나는 노예인 그들이 감독자 때문에 울부 짖는 것을 들었으며, 그들의 고통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내려갔다..."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대답한다. “주님, 당신의 종을 용서하소서. 부디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출애굽기 3:7-8a; 4:13).
출애굽기 3장과 4장에 나오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사건은 기독교 역사 전반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고 또 사람들을 부르셨는지에 대한 상상력을 일으키는 중요한 본문이 되어왔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사사기 6:11-24)이나 예레미야(예레미야 1:4-9)의 부르심과 본질과 패턴에서 매우 유사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구속 사역에 참여하도록 초대하고 계심을 느낀 많은 사람들과도 공명한다. 그 패턴을 함께 탐구해 보자.
모세의 부르심은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노예 상태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의 고난에 대해 주목하고 계시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내용에 있는 모든 행동 동사에 주목해 보라. “나는 보았다... 나는 들었다... 나는 걱정스럽다... 나는 내려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버림받았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일하도록 내버려졌다고 느낄 수 있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과 걱정에 대해 멀리 계시거나 모르시는 분이 아니었다.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종종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세상에 있는 필요들에 대해 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깨어진 세상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공유하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그 고난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모세를 신성한 해방의 사역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신다. “해방”이라는 단어는 정치적으로 포화되어 있는 현대 문화에서 여러 뜻이 있는 단어일 수 있다. 그러나 해방, 또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출애굽기의 이야기의 중심 주제일 뿐만 아니라, 구원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있어서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기독교 구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의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죄의 세력(내적, 외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죄와 억압, 그리고 깨어짐의 사슬에 묶여 있는 동안에는 성결의 온전함이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해방의 사역은 인간의 참여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되도록 모세를 초대하신다. 하나님은 여전히 포로를 자유롭게 하는 그의 사역에 참여할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저항과 자기 의심에 맞닥뜨리게 된다. 불타는 떨기 나무 앞에 서있는 모세는 다양한 형태의 주저함과 걱정들로 가득차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내가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들이 나를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는 두 가지 심각한 거절의 이유를 들며 끝을 맺는다: 나는 은사가 없거나 자격이 없습니다. 부디 다른 사람을 보내세요.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모세의 믿음 없음과 용기 없음에 대해 비판적이기 쉽다. 그러나 그의 과거와 애굽 제국의 압도적인 힘과 함께 이 문제를 생각해 보라.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낄 때 압도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면서 그들이 은사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은사에 대해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거나 또는 하나님의 구속적 목적에 대해 너무 작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라고 어떤 사람을 부르시는 일은 그 사람 자신의 힘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영과 능력으로만이 그분이 우리를 부르신 것을 성취할 수 있다.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자유와 인내로 가득차 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은 단순히 명령을 내리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목하라. 하나님은 또한 모세를 지속적인 대화에 초대하신다.
첫째, 하나님은 자신을 자유롭다고 묘사하신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나는 나다)”라고 선언하실 때, 이 이름은 하나님이 정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계속적이며 역동적인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관심에서의 목적은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걱정과 믿음의 부족과 상호 작용하시며 이 새로운 계획에 자유롭게 응답하신다.
모세는 자유롭게 반대하거나, 우려를 제기하거나, 심지어 단순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의 비밀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모세의 참여가 없이는 일어날 수 없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목적은 모세의 믿음의 부재와 참여의 부재로 인해 방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가올 더 큰 일에 대해 그를 준비시키는 목적 뿐 아니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 가실 것을 그에게 상기시키시며 여러 표징들을 주신다. 하나님의 선교에 아론을 포함시키는 것은 모세가 실제로 혼자가 아니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또한 그 공동체 안에서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분명히 중요한 갈등들의 세계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운 순간들이 올 때, 하나님은 가시적인 돌봄과 보호의 방법으로 행동하실 것이며, 모세는 (문자적으로) 아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출애굽기 이야기를 처음 읽는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모세의 초기 반응의 연약함과 주저함을 보며, 이 두려움에 떨며 이것 저젓 하소연을 하는 이 양치는 목자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가 되어 그들을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바다를 건너게 하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게 될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준비된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들을 준비시키신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좋은 일이다.
나는 17세에 세계 청년 대회(현재 NYC 나사렛유쓰컨퍼런스)에서 전임 사역에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다. 한 저녁 시간에 스티븐 맨리박사가 요한복음 12:26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거기에서 예수님은 “내가 있는 곳에 나의 종도 또한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설교에서 맨리 박사는 우리가 종종 그 순서를 반대로 받아 이해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는 여기로 가고 있습니다 … 내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오셔서 나를 축복해 주세요” 라고 말한다. 그는 예수님이 우리의 우선순위를 가져 가셔야 한다고 상기시켰다. 주님은 추구하고 있는 목적을 가지고 계시며, 그분을 따르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날 저녁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깨달았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했다. 나는 반항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 삶에 대한 계획과 목적을 정돈하고 있었고, 하나님을 나의 여정에 함께 하시도록 초대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내 삶을 올바른 순서에 놓기로 헌신했다. 하나님이 내가 가기를 원하시는 곳마다 나는 따라갈 것이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시거나 또는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에 대해 실제적인 감각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부르신 일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순간에 우리가 누구인지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가 되도록 만드실 수 있음으로 인해 우리를 부르신다.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죄, 아픔, 고난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그분의 자유케 하시는 사역에 참여하도록 당신을 초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그분과의 대화와 여정에 초대하고 계신다. 그분은 당신의 걱정거리와 부적절함을 알고 계시며, 그분의 사랑과 재창조로 당신의 자유와 실패에 응답하실 수 있다.
당신과 나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임재와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부르심의 공동체 안으로 넣으신다.
스콧 대니얼스는 나사렛교회의 국제 총회 감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