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갈 메리 루 셰이

하갈 메리 루 셰이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어머니였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하갈이 폭풍우와 같은 관계 가운데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사라는 하갈의 여주인이었다; 그녀를 소유한 사람이다. 하갈은 젊은 여자로 그녀의 고향 이집트에서 끌려왔거나 또는 팔려 노예였다. 사라는 아들을 갖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녀의 육체가 아들을 제공할 없었기 때문에 대신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의 몸을 주었다. 하갈은 자신이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속자를 제공할 때까지 사용될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하갈에 대한 사랑이나 애정, 심지어 존중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브라함에게서도 그러한 부분은 보이지 않으며, 물론 사라에게서는 더더욱 찾아 없다. 하갈의 삶은 그녀가 임신한 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성경은 그녀가 사라를 업신여겼다고 말해주고 있으며, 의심할 여지없이 사라의 상황에 대해서도 그렇게 대했을 것이다.

 

사라의 학대와 아브라함의 무관심의 결과로 하갈은 도망쳤지만, 멀리 가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천사가 그녀를 만나서 사라에게 돌아가라고 명령하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과 유사한 약속을 하갈의 아들에게도 하셨으며, 그의 후손이 너무 많아 없게 것을 알렸다. 천사가 하갈에게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로 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는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이미 하갈에게 응답하고 계셨으며, 그녀는 이제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해 나섰던 참이었다. 그녀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했으며 다시 사라에게로 돌아갔다. 뜻밖에도 그녀의 지위는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에도 변하지 않았다.

 

 

12 사라가 임신하여 이삭을 낳았다. 그러나 사라의 기쁨은 걱정으로 뒤덮였다. 이스마엘은 위협이 되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여종과 그녀의 아들 제거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여종의 아들이 아들 이삭과 함께 유업을 결코 나누지 못하게 ”(창세기 21:10) 이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집안의 구원으로 간주되었던 사람, 하갈과 이스마엘은 사라가 그들의 이름도 언급하지 않을 만큼의 친절도 받을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성경은 사라의 요구가아브라함을 크게 괴롭혔는데, 이는 그의 아들 이스마엘에과 관련이 있기 때문”(21:11)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갈의 운명에 대해 어떤 종류의 염려를 표현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가 여전히 그녀를 사라의 적으로만 이해했으며 그의 집안의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그녀의 아들을 돌보실 것이라고 확인해 주셨으며, 다음 아침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보내며 그들에게 음식과 가죽부대를 지워 주었다. 따로 축복은 없었다. 작별의 키스도 없었다.

 

그들에게 부족한 공급품들은 빠르게 줄어들었으며, 죽음의 유령이 가까이 그려져 있었다. 하갈은 아들을 수풀 아래에 두고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앉았다. 그녀는 아이가 죽게 것이라는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지켜보는 것을 참을 없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아이의 이름을 따서 지었던 하나님은 어디에 있었을까? 들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갈은 모든 상처와 굴욕, 잃어버린 희망, 이스마엘의 임박한 죽음을 생각하며 울기 시작했다. 이스마엘 역시 울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들으셨다.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에게 말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하나님께 단순히 이름없는 여종 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하갈이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인내했으며, 살아남았으며, 그의 명령에 순종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존엄성과 자유를 희생시켰을 때에도 말이었다. 하갈은 평생 동안 크게 또는 작은 방식으로 고난을 겪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이제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들으셨나니...”(창세기 21:17). 

 

오래 전에 하갈의 말을 들으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그녀의 소리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었다. 그는 생명과 약속, 자비와 은혜에 대한 말씀을 주었다. 노예와 낙하의 삶이 가장 낮은 곳에서 느껴졌을 , 하나님은 하갈의 눈을 여시사 가능성들과 그가 공급할 것에 대해 보여 주셨다. 하갈은우물 발견했다. 본문은 하나님이 샘을 모래 사이에서 솟아오르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라고 주의를 기울여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녀의 눈을 열어 주셨더니 그녀가 우물을 보았다(21:19). 샘은 줄곧 그곳에 있었지만, 그녀의 슬픔, 분노, 굴욕, 피로, 절망 속에서 하갈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마련하신 길을 없었다.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바란 광야에서 살았다. 그들은 그들의 상황으로부터 구출되지 않았다; 그들은 상황 안에서 구출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 그대로 두셨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새로운 삶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기뻐했으며, 그저 해야 , 생존을 위한 음식과 , 자신의 가족을 꾸릴 있는 외에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들이 것처럼 보여지지는 않지 않은가? 당신이 괴롭힘, 무시, 학대, 가족에게 버림받음, 절망, 거의 죽음에 가까이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들으시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분은 그가 가진 , 우리가 기꺼이 그에게 주려는 것을 가지고 일하신다. 그것들이 지저분한 것들일까? 복잡할까? 이상적이지 않은 것들인가? Sí. 물론 아마도 우리는 말로 표현할 없는 고통과 헤아릴 없는 거부를 경험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일부는 하갈처럼 성적 학대를 당했거나 인신매매로 팔렸던 적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난장판, 우리의 복잡성,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취하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하게 보이는 그것들을 특별한 것들로 변화시킬 있으시다. 계속 기도하라. 계속 지켜보며 기다리라. 계속 부르짖으라. 하나님이 당신의 눈을 여시사 그분의 공급에 대해 보게 하시기를 바란다. 우리의 하나님 들고 계시므로 포기하지 말라.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그를 가장 필요로 응답하신다.

 

메리 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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