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보다 더 많은 것

저것보다 더 많은 것

케이티는 금요일 밤을 기다리며 살았다. 금요일 밤에 받아야 하는 심각한 돈이 있었다(적어도 최저 임금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 나는 18 세였고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 필드에 있는 우디 식당에서 웨이터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케이티보다 나은 트레이너는 없었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지만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당신이 레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아이스티에 넣을 여분의 레몬을 가져다 주었다. 당신이 계산서를 요청하면 이미 계산서는 그녀의 앞치마에 들어 있었다. 케이티는 어려운 일을 쉬워 보이게 만들었다.

 

케이티의 견습생으로의 나의 저녁에, 그녀는 자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일이 바빠지면 돕고, 필요가 생기기 전에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20 달러 지폐를 주며그게 나온 곳에 많은 돈이 있다 말했다. 나는 그날 케이티를 열심히 따라 다니며 일했다. 그리고 밤이 끝났을 케이티가 말한 대로 많은 20달러 지폐를 들고 집으로 돌아갈 있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할 (고린도전서 15:20),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곳에는 많은 부활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가 모든 약속을 지키실 것을 신뢰하면서 그의 모든 행동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고린도 교회나, 또는 이와 비슷한 어느 곳에 있던 교회라도 이상의 부활은 이제 없을 것이라는 의심이 있었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충실하게 따르며 십자가의 길을 따라 있었을까예수님이 처음이요 나중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피조물로 사는 것이 가벼운 짐과 쉬운 멍에처럼 느끼도록 만든다.

 

바울은 열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대한 깊은 성경적 전통에서 오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실 약속의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땅의 열매는 하나님께 돌려드릴 것이라는 말씀을 었들다. 그들은 맥추절을 지켜 땅의 열매를 하나님께 가져오게 것이다(출애굽기 23:16 참조). 그들의 가축의 열매는 제사장의 몫으로 주어져야 했다(민수기 18:20 참조). 그들은 자신들이 건설하지 않은 도시에 살았으며, 자신들이 세우지 않은 집들에 살았고 자신들이 파지 않은 저수지와 자신들이 심지 않은 포도밭을 가지게 되었었을 (신명기 6:10-11 참조) 열매 제물들은 그들을 종의 자리에서 해방시키고 땅을 그들에게 주신 분에 대해 상기시켰다.

 

이스라엘 백성은 땅에 들어갈 , 번째 거둔 승리 역시 열매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었다. 그들이 가나안의 도성으로 정복한 여리고도 이스라엘의 전리품이 되지 않았다. 아무도 그곳에서 금이나 은을 취하여 갖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도성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거주하는 사람이 없는 남아 있어야 했다(여호수아 6-7 참조). 여리고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번째 도시였지 마지막 도시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성을 손에 쥐려고 필요가 없었다. 약속의 땅에는 많은 그와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뒤에 어떤 것이 올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곡식, 송아지, 땅을 드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열매들을 쌓아 두는 것은 결핍에 대한 생각을 보여 주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다.

 

나는 달에 나의 멘토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그녀는 처음 것에 대해 알고 있는 뛰어난 여성이다. 그녀가 가졌었던 거의 모든 지위들에서 그녀는 자리를 차지한 첫번째 여성이었다. 어느 아침 우리는 여전히 교회의 지도력 부분에서 여성들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우려하며 토론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개척자로 생각한 적이 번도 없으며 하나님이 부르심으로 하라고 하신 일을 사랑으로 했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그녀는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자신 이후에 계속해서 나오게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매는 희생과 사랑의 노력을 반영한다. 그것들은 모든 수확물을 거두어 먹고 남아있는 햇빛에 타고 주름진 마지막으로 걸려있는 그런 열매가 아니다. 그것들은 포도나무에 있는 처음 나와 유일하게 걸려있는 리봉오다. 그들은 당신이 그렇게 찾아올지 확신하지 못했던 새벽과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당신의 희망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바울이 어떤 도시의 회심자를 묘사하기 위해 자주 사용한 단어 역시 열매였다. 고린도에서는 열매가 스데바나의 가족이었다(고린도전서 16:15 참조). 새로운 신자들은 성도들에게 희생적인 봉사로 헌신했다. 그들의 수고스러운 사역을 통해 하나님은 고린도에서 수확을 맺으셨다. 스데바나의 가족은 번째였지 마지막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확을 가져다 주신 분은 하나님이었다.

 

토니는 이제 안에 받게 세례를 준비 하고 있다! 그녀는 61세의 나이가 까지 교회에 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수고하여 신선한 농산물과 식료품들을 그녀의 아파트로 가져다 주었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다. 그녀는 성경 공부에 참여했고 예배에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녀의 삶을 예수님께 드렸다! 내가 그녀에게 세례에 대해 권유했을 처음에는 주저했다. 그런 그녀가 준비 되었다고 있을까? 혹시라도 그녀가 세례를 받은 후에 여전히 실수를 범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지만 만일 이상의 경험할 은혜가 그곳에 없다면 어떻게 할까? 나는 세례가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와 같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며, 걸음이지 마지막이 아니다. 은혜가 처음 나온 그곳에서 많은 은혜가 나올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이미 주지 않으신 것들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열매 제물로 주셨다. 말로 표현할 없는 희생,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가 나온 곳에서 많은 은혜가 있게 것을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심지 않았던 포도원에 집착하며 열매에 대해 닫혀져 있는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또한 관대함으로 드려지셨다.

 

처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봉사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때로 굳어 버린 땅에서 밟히고 있는 은혜는 일종의 낭비라고 느끼게 되는 그런 날들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비록 우리가 번째 일지라도 사실 우리는 도시를 건축하지 않았고 집을 채우지 않았으며 수확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부르심에 대한 일을 하면 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는 부활이 나온 곳에서 많은 부활이 있을 것을 믿으며 그분과 같은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로마의 성도들에게 바울은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날을 기다리며 수고로 신음하고 있다고 묘사한다(로마서 8:22-24 참조). 신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피조물의 열매들이 된다. 창조는 사실이다. 우리는 번째이지 마지막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기다리며 지켜보며 섬기며 또한 희생적으로 살며, 어두운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게 하시고 외로운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피조물의 수확을 가져오실 것을 확신하며 살아야 한다.

쇼나 송거 게인스는 트레베카 커뮤니티 나사렛 교회의 담임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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