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날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추고 주변 환경을 관찰해 보라. 무엇을 보는가? 무엇이 들리는가? 어떤 냄새가 나는가? 어떤 물체를 만질 수 있는가? 가까이 있는 것 중에 맛을 볼 수 있는 것이 있는가? 당신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신체 기관들의 역량이 있어서, 당신은 이를 사용하여 주변의 물리적 세계와 매일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체 기관의 역량들이 영적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까? 신체적 감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적 통찰력에 대해 당신이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창세기 1:1-2:3은 창조의 때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 성경 구절을 읽고 그 본문이 어떤 관점에서 쓰여졌는지에 대해 주목해 보라. 당신은 매일 일어나는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을 신속하게 확인하고 시각화 할 수 있는데, 이는 그 분이 손으로 하시는 일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창조의 날들에 대해 물리학자, 생물학자, 또는 천문학자의 렌즈를 통해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주목하라. 우리 대부분은 그러한 전문적 정보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의 경이로움에 대해 평균적인 남성, 여성, 십대, 그리고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떤 문화적, 언어적, 지리적 장벽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의 6일에 대한 기록은 두 개씩 묶어진 세개의 세트로 보여진다. 첫째 날은 빛의 창조에 대해 묘사하고 넷째 날은 빛을 가지고 있는 것들의 이름을 설명한다. 둘째 날은 하늘과 바다의 창조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다섯째 날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바다 의 생명체를 창조하신 것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셋째 날에 뭍이 드러나게 하시고, 여섯째 날에는 동물과 인간으로 그 땅을 채우신다. 성경은 이를 의도성을 가지고 단순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기독교 전통에 대한 많은 영적인 진리들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1.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성경은 이 진리를 증명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태초에 하나님”이란 우리에게 있는 이 물리적 세계를 존재하도록 만드신 분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마지막 세부 사항까지 매일 계획하셨다. 창조주나 창조세계는 그냥 무작위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이끄심이 모든 것을 존재로 가지고 왔다.
3 하나님께서 매일 일어나는 일을 총 기획하고 지휘하셨다. 그는 창조의 과정의 각 단계에서 논리와 질서를 가지고 실행하셨다.
4.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함께 일하셨다. 창세기 1:2와 요한복음 1:1-5은 이러한 이해를 알려준다.
5. 하나님은 창조세계에 신성의 특징 그 실마리를 놓아 두셨다. 놀랍고도 다양한 지질과, 식물, 동물, 그리고 바다 생물의 다양성은 우리에게 다양성과 복잡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창조에서 이루어진 색깔의 사용과 아름다운 대칭은 하나님의 미학적 감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계에 있는 풍부한 자원은 하나님의 끝없는 잠재성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6.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에 대해 그 경계와 목적을 정하셨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그의 신성한 명령에 순종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어 냈다. 즉 “그대로 이루어졌다”(창세기 1:11).
7. 하나님은 인류를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모든 피조물의 청지기로 삼으셨고, 그들과의 매일의 관계성을 보게 하셨다(창세기 3:8).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류의 타락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을 거부한 유일한 피조물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인류의 불순종이 하나님의 목적을 완전히 좌절시키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재창조(Re-creation)
요한복음 1:1은 인류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응답을 선포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창세기 1:1이 창조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처럼 요한복음 1:1은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적 재창조, 즉 새로운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 이어나간다. 바울은 로마서 5:12-14에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라는 첫 아담의 죄악된 선택이 가져온 영적 죽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로마서 5:15-21에서 묘사한다. 이 극적인 대조 방식을 주목해 보라. 첫 아담은 죄와 사망을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 안으로 가져왔다. 둘째 아담은 인류에게 의로움과 생명을 제공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많은 측면은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첫 창조의 특징을 반영한다.
1. 신성한 정체성.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하나님보다 덜 중요한 창조주가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요한복음 1:1).
2. 신성한 권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의로움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한 은혜와 하나님과의 공의 그리고 칭의의 선물을 가져올 권세를 가지셨다(로마서 5:15-17).
3. 새 창조.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린도후서 5:17).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자신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3:3).
4. 신성한 회복. 창조의 첫날에 있었던 혼란에 대해 공허함과 어둠으로 묘사한 것처럼 (창세기 1:1), 죄는 인간의 마음 속에 공허함과 어둠을 가져왔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영혼에 빛을 가져오셨고, 그 빛은 혼돈을 질서로 바꾸어 놓았다(요한복음 1:4-5).
5.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라. 하나님은 창세기 1장 전체에서 창조를 선한 것으로 묘사하셨으며, 여섯째 날의 끝에서 “심히 좋다”라고 말씀하심으로 그것은 절정에 이르렀다(창세기 1:31).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돌아가서 자신과 또 다른 이들과, 그리고 하나님의 나머지 창조질서와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된다.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온 것은 그들이 생명을 얻으며, 그리고 그것을 충만히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요한복음 10:10)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이 관점을 로마서 5:18에서 반복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8).
그 사이 기간
우리는 이제 이미와 아직의 중간 기간에 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의 제자로 살아가라고 가르치셨고,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후, 아버지의 우편으로 돌아가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열망의 기대를 가지고 바라본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원래의 창조 목적 대로 회복될 것이다. “때가 이르면 실행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1:10). 요한계시록 21장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날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거주하기 위해 먼 행성으로 여행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을 이 땅으로 가져오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21:3은 그 날을 보도록 한다. “보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이제 사람들 가운 사이이며, 그는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될 것이며,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그 날에 하나님은 모든 창조세계를 평가하시되 그것이 “매우 좋았다”라고 선언하실 것이다.
프랭크 무어 는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중앙 편집인 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