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무덤 비석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을까?

40년이 넘는 사역을 되돌아볼 때,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백성인 교회와 함께 한 사역의 기쁨으로 인한 감사로 충만하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와 동시에, 실현되어지지 않은 꿈들이 있다. 끝마쳐 지지 않은 일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비전들 말이다. 지나온 길에 있었던 실망들도 있다. 모세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그의 삶이 이루지 못한 꿈들의 비극으로 정의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패'가 그의 묘비명이 될 수도 있었다!

 

모세의 율법: 언약의 신실성이 구체화됨

성경의 이야기는 다양한 관점에서 모세를 회상한다: 바로의 궁정에서 자라난 히브리 아이, 광야에 있는 도망자, 목자이자 교사, 반역한 공동체와 대립한 자, 그리고 하나님 앞에 중보자. 그러나 율법을 가지고 온 자로의 기억보다 더 유명한 모세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선물로 하나님께 받은 이 율법은 무엇인가? 고대 히브리 사람들에게 그 목적과 중요성은 무엇이었으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 중요한 의미는 무엇일까?

공포의 재앙들, 해방의 손길

당신은 지금의 나를 늙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지도자 모세가 바로와 대면하고, 주님이 애굽에 재앙들을 보내셨을 때 나는 소년이었다. 나는 히브리 노예였으며, 나의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그 이전의 나의 젊은 생각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세대들 역시 노예였다. 재앙들이 있기 전에도 나에게 삶은 힘들었으며, 벽돌 가마에서 일하는 암울하고 압박스러운 날들이 감독자들의 핍박속에 계속되었다. 재앙들이 닥쳤을 때, 우리 히브리 사람들은 그 직접적인 영향으로부터 대부분 보호 받았지만, 여전히 삶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모세를 향한 부르심에서 우리 자신을 보다

주님은 “나는 애굽에 있는 나의 백성의 고난을 분명히 보았다. 나는 노예인 그들이 감독자 때문에 울부 짖는 것을 들었으며, 그들의 고통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내려갔다..." 말씀하셨다.

 

중앙아메리카에서의 희년

그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우리는 과테말라 북대서양 연회 총회를 위해 2시간 동안 밴을 타고 리오 둘체로 이동해 갔다. 이 연회는 2년전에 남대서양 동부 연회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그곳에 사는 케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사역하기 위함이었다. 연회 감독은 에프라인 윌프레도 목사였다. 그는 몇 년 동안 목회자로 활동했으며, 집에는 자라나고 있는 자녀들이 여전히 있었다.

 

모세

D. L. 무디는 모세의 삶을 세 단계로 묘사한 적이 있다. "모세는 처음 40년 동안 자신이 특별한 누구라고 생각하는 데 보냈다. 그는 두 번째 40년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배우는 데 보냈다.

거룩한 존중: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

성경은 숨 멈출 만한 놀라운 선언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이 존엄성은 공로에 의해 획득되거나, 달성되거나,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다. 우리가 행동하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하기 전에 이미 창조주가 선포한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 되어지다.

우리의 삶을 통틀어 우리 인간은 다음과 같은 실존적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왜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것들은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본성, 그리고 우리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 힘쓰며 던지는 질문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6-27)라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던지는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위의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