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존중: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기

성경은 숨 멈출 만한 놀라운 선언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이 존엄성은 공로에 의해 획득되거나, 달성되거나,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다. 우리가 행동하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하기 전에 이미 창조주가 선포한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진 것이 되어지다.

우리의 삶을 통틀어 우리 인간은 다음과 같은 실존적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왜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것들은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본성, 그리고 우리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 힘쓰며 던지는 질문들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6-27)라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던지는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위의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남성과 여성: 공유된 하나님의 형상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잠시 멈추고 그 진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라. 성경의 첫 장에 있는 이 심오한 선언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가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창세기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이것은 우연한 설계가 아니라 관계와 소명 모두에 뿌리를 둔 인간에 대한 품위있는 비전이다. 이 비전을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간의 모습을 우리로 볼 수 있게 한다. 즉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참여하는 인간으로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 모습이다.

자국 아래에 숨겨진 이미지

어린 시절 학교에서나 주일학교에서, 그 날의 교훈과 숙제가 인쇄되어 있는 종이를 받곤 했는데 이제 그것은 집에서 마무리되도록 주어진 것들이었다.  거기에는 그 날의 교훈을 다시 되새기고, 학습을 강화시키며, 배운 진리를 계속 갖고 있도록 돕는다 좋은 의도가 있었음을 확신한다. 나는 그 과제물들에 신경을 계속 쓰면서, 나는 나름대로 그 숙제들을 해 나가는  내 자신의 방법을 발견해 냈다. 나는 과제물에 그려진 인물들에게 콧수염을 덧붙였다. 치아들은 검게 표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펜과 잉크를 통한 작품이 완전하게 표현되었다. 모나리자의 얼굴에 콧수염을 그려 넣고 싶은 유혹을 이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또는 별로 의심할 것 없는 제자의 눈에 해적의 눈 가리개를 그려 넣고, 이빨  사이에 단검을 스케치 하려는 것들 말이다. 그것은 무해한 장난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영광에서 또 다른 영광으로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17-18).

 

아담 안에서 태어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무엇인가가 깨져 있다.

당신이 더 나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당신 안에서 무엇인가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지고 있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당신은 분노 가운데 당신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잔인한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이 부끄러워 하는 선택을 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