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때

아담의 이야기는 또한 우리의 이야기 이다. 아담이 이 지구위를 걸었던 시대 이후 수천 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와 여전히 매우 유사하다. 인간의 본성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아담을 수 많은 축복으로 가득찬 그 창조하신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디자인하셨다. 그러나 아담은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세계를 선택했고, 그 세계는 빠르게 비극적으로 붕괴되었다. 운 좋게도 하나님이 개입하시어 그를 되찾아 주셨으며 언젠가 그와 그의 후손들이 원래 그들을 위해 지어진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

 

축복을 받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축복을 받았다. 그것이 아담이었다. 사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좋은 것들을 받아본 경험을 갖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님은 아담을 당신의 창조에서 왕관과 같이 특별히 보살펴 주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풍부한 식량 자원과 아름다운 동산을 주셨다. 아담을 둘러싼 동식물들은 동화 작가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웠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아담에게 목적으로 가득한 삶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에덴동산에서 의미 있는 일을 맡기셨는데 그곳을 보살피고 관리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는 땅위의 모든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며, 그것들이 번영하도록 돕는 책무가 주어졌다.  놀라운 책임이다. 놀라운 목적이다. 하나님과 함께 그분의 놀라운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더 나아가, 아담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최고의 경험을 가졌다. 하나님은 하와를 아담에게 완벽하게 맞도록 지으셨으며, 아담은 바로 하와가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 속에서 안전하다고 느꼈고, 서로에 대하여 완전히 정직할 수 있었다.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아니하였더라”(창세기 2:25).

그리고 하나님과 방해받지 않는 교제를 누리는 놀라운 축복이 또한 그에게 있었다. 하나님은 정기적으로 아담과 함께 말씀하시고 걸으셨다. 두려움이 없었다. 겁박도 없었다. 그것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절대적인 조화였다.

 

깨어

그러나 아담은 그에게 많은 것을 주신 분이 아닌 다른 존재의 목소리를 신뢰했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대로 세상을 만들기로 선택했다. 이 결정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자신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나머지 피조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은폐하고, 숨기고, 비난했으며, 나머지 창조세계를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것들 중 어느 것도 하나님의 원래 계획의 일부가 아니었다.

아담의 선택이 나은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서 숨었다. 그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에 그는 직접적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창조주는 그의 친구가 아니라 적이 되었다.

계속 이어진 사건들은 다른 것을 향한 손가락질로 이어졌다. 아담은 하와를 탓했고, 하와는 뱀을 탓했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나머지 피조물 사이의 조화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 대 그들”이 되었다. 사회적 역기능이 그 출발점에서 시작되었다.

왜 그러한 분열이 발생했을까? 왜 하나님의 이상적인 세계에는 그토록 많은 불화가 존재할까? 아담은 더 이상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세계의 통치자가 되기 보다는 그 피조물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었다. 우주에서의 그의 역할은 빼앗겨졌다. 뱀이 아담을 관리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그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그 모습보다 덜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나머지 피조물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담이 한 선택들은 하나님의 세계의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쳤다. 땅은 저주를 받았고, 그것을 생산적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동이 필요해 졌다. 뱀들은 그들의 배로 기어다니게 되었고, 출산은 고통스러운 것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아담이 하나님의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세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되찾아짐

다행히도 아담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즉시 사랑으로 자신의 피조물들을 되찾기 시작하셨다. 하나님이 그날 저녁 동산에서 걷기로 결정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또한 하나님이 아담에게 그저 무작위로 질문을 하신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창조물과의 화해를 추구하시는 행위였다.

우주의 하나님은 그날 저녁 아담이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질문하셨다. “네가 어디 있느냐?” (창세기 3:9). 나는 하나님이 아담을 쉽게 찾으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이 질문의 포인트는 아담으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거친 사랑의 질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자신이 내린 결정이 그를 어디로 데려왔는지 잘 살펴보라고 도전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스스로에게 진실되기를 사랑으로 설득하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숨고자 했고, 하나님의 임재가 불편했으며, 그의 아내에 대하여,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해 불편했다. 죄가 그 대가를 만들어 내 내었다.

이야기가 계속 펼쳐지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죄가 완전한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을 추구하셨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처럼, 하나님은 분명히 형벌을 즐거워하신 것이 아니다. 그가 심판을 내리신 것은 그것이 그의 사랑의 대상이 회복되어지는 일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이 있었던 위치 에서 그에게 역사하시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해 옷을 만들어 주심으로 수치심에 대한 감정을 덜어주셨다. 하나님은 아담을 동산에서 그리고 그 미혹으로부터  옮기시고 그에게 에덴 동쪽에서의 중요한 일을 다시 맡기셨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친밀한 관계의 아름다움은 그날 사라졌지만, 육체적 사망은 수백년이 지난 후에야 왔다. 아담의 삶을 통틀어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에게 자녀들을 통해 또는 다른 방법으로 축복을 주셨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구세주에 대한 숨겨진 약속을 아담에 남겨 두셨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뱀에게 언젠가 하와의 후손 중 하나가 “네 머리를 짓밟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창세기 3:15). 파멸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그들의 세계로부터 구원하실 계획을 마련하셨다.

 

결론

오늘날 우리는 어떤 면에서 아담과 같은 정체성을 나누고 있는가? 너무나 자주, 우리가 받은 축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를 축복하신 분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를 따르는 것을 선택한다. 그 결과로 우리는 깨어지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우리 자신, 그리고 나머지 피조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서늘한 저녁 시간에 동산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한 번 부르시고 또한 회복시키기를 갈망하고 계시다.

 

짐 에드린은 캔자스 주 올레이따에 있는 미드아메리카 나사렛 대학의 성경 문학과 언어과 의 은퇴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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