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보니 페리

그녀의 결혼식 전날 밤은 아마도 젊은 그녀의 삶에 있어 가장 달고도 쓴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동생 라헬의 그늘 아래서 평생을 보낸 덜 매력적인 언니 레아를 만나보자. 이 자매들은 같은 남자를 사랑했으며, 남자는 그들 둘 다와 결혼하려고 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그의 마음을 소유할 것이다. 레아의 이야기는 한 시대를 뛰어 넘는 이야기이다.
이 가족 드라마에는 어떤 뒷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조작과 기만으로 뒤덮여 있다. 신랑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그의 형 에서의 장자권을 훔쳐 도망 중에 있다. 부모의 지시에 따라 야곱은 집을 떠나 삼촌 라반을 찾아서 그의 딸들 중 하나와 결혼한다. 이는 야곱이 이교도 아내의 매력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야곱은 그의 사촌 라헬을 만나 즉시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히브리 신부를 맞기 위한 비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야곱은 라반과 거래를 맺는다. 야곱은 라헬과 결혼할 권리를 얻는 대가로 7년 동안 라반 밑에서 일할 것이다. 라반도 이에 동의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봉사했지만,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그 기간이 단지 며칠 뿐인 것으로 보였다”고 말한다(창세기 29:20).
그 날이 마침내 왔다 먹고 마시는 혼인잔치 후 야곱은 베일을 쓰고 있는 신부를 데려와 취한다. 그러나 라반은 젊은 여자가 나이 많은 여자보다 먼저 결혼하지 말라는 히브리 전통을 굳게 지켰다. 그러므로 결혼식 신부의 베일을 쓰고 있던 것은 라헬이 아니었다. 그의 결혼식 밤에 속이는 자 야곱은 이번엔 속아진 자가 된다. 그리고 사랑스럽지 않은 레아는 영원히 사랑받지 않는 자의 순위대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라반이 레아에게 음모의 방식으로 그녀가 야곱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을 때 느꼈을 레아의 두려움을 상상할 수 있다. 분명히 그녀는 낯 시간동안 이 후 예상되는 신랑의 실망과 거부를 생각하면서 당황스러움과 수치심, 두려움 속에서 씨름해야 했을 것이다. 그녀는 틀리지 않았다. 야곱은 즉시 그의 새 장인과 대면하여 정의를 요구한다. 라반은 야곱이 7년을 더 일 하는 것을 매개로 라헬을 그에게 주기로 동의한다. 그리고 야곱의 “라헬에 대한 사랑이 레아에 대한 사랑보다 더 컸다”(29절).
이러한 상황은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삶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이 자매들 사이의 경쟁은 치열하고 양보가 없었다. 히브리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레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산을 할 수 있으며 라헬은 아기를 낳지 못하고 있다.
레아는 야곱에게 세 아들을 주었는데, 이는 히브리 여인에게는 커다란 업적이다. 매번 출산할 때마다 그녀의 영혼은 절망과 희망 속에서 울부짖는다. … 분명히 그는 이제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 삶은 충분히 좋아질 것이다. 내 삶의 정당성이 증명될 것이다. 라헬은 이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분명히 남편은 이제 나를 사랑할 것이다(창세기 29:31-35).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라헬은 여전히 야곱의 사랑이다. 우리는 레아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네 번째 임신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녀는 단지 피곤했던 것일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지, 레아는 휴식의 시기에 들어섰다. 그녀의 네 번째 자녀는 아들이다. 아이를 낳을 때 그녀는 “이번에는 내가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녀는 아이의 이름을 유다라고 지었다. 이 말은 “찬양하라” 또는 “감사하라”를 의미한다.
우리는 뒤늦게라도 돌아 볼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우리는 유다 지파가 다윗의 지파였으며, 궁극적으로 메시아의 지파가 됨을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이다. 레아의 이야기를 읽으면 우리는 그녀의 삶에서 아마도 가장 값비싼 희생을 통해 사랑받지 않은 레아가 잉태하여 메시아를 낳았다는 것을 알 게 된다. 그녀가 상상할 수 없는 거절의 경험들을 통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 이 젊은 여성은 하나님이 그녀의 헌신의 순간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 주실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 모두는 해피엔딩을 좋아하지 않는가? 우리는 레아를 응원하고 있으며, 유다의 탄생과 함께 그녀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제 계속해서 노력하는 것을 멈추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 자매들은 야곱을 놓고 계속 싸우고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창세기에 나오는 그 다음 장들에서도 계속된다. 몇 년 후 레아는 결국 야곱에게 두 아들을 더 낳는다. 스불론을 낳을 때 그녀는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므로 이번에는 내 남편이 나를 존중할 것이다”라고 외친다(창세기 30:19).
야곱이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라헬에 대한 그의 헌신은 감소되지 않았다. 20년 이상이 지난 후 야곱이 다시 돌아와 그의 형 에서와 대면할 때, 그는 그가 받아들여 질 것인지에 대해 두려워하며, 이에 따라 이동 무리를 적절하게 준비시킨다. 야곱은 자신의 여인들을 가까이에 있게 했다. - 여종들이 앞서 가고, 레아와 그녀의 자녀들이 그 다음이며, 라헬과 그녀의 아들들은 그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나아갔다. 그가 유다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 레아의 위치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모르고 그녀 역시도 모르고 있다.
레아는 그녀의 무덤으로 향하는데 그녀가 겪은 삶의 거부들을 찬양의 희생으로 바꾸는 순간 하나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보셨다. 우리는 레아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 그러나 몇 년 후 야곱은 그의 아들들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린다. “나를 내 조상들과 함께 아브라함이 구입한 동굴에 묻으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그곳에 묻혔으며,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가 그곳에 묻혔고, 나는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그 사랑받지 않은 사람은 족장들의 굴에서 신앙의 영웅들과 함께 쉬게 될 것이다.
주님,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순간들이 주님께 봉헌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나의 순복은 내가 요구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성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