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 제니 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그 여정에서 라합은 예기치 않은 인물이었다. 구약에서 잠시만 언급된 가나안 기생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안에 들어 가는 것으로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전당”에 들어 가는 것으로 마쳐질 수 있었을까?
라합의 이야기는 주목할만하다.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으며 광야를 방황했던 수년 후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 바로 밖에 있는 것으로 여호수아 시작 부분에 나오게 된다. 모세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언약적 신실함 속으로 그들을 초대했으며, 그 후 그는 죽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다음 지도자로 임명하셨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약속을 이제 며칠 후에는 이루게 될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 새롭게 약속된 땅, 특히 여리고를 정탐하기 위해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바로 우리가 라합을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이다. 그녀의 집은 성벽 가까이에 위치해 있었던 것 같다. 학자들은 여리고를 둘러싼 보호 성벽이 그 도시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처가 되었었다고 믿는다. 정탐꾼들에게 있어서 마을 가장자리에 있는 한 집 지붕보다 정찰을 위해 더 좋은 곳이 어디에 있을까?
여호수아 2장에 나와있는 이야기에서 여리고의 성주는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그들의 땅에 들어왔다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곧장 라합에게로 찾아간다. 성주는 라합에게 정탐꾼들을 자신에게 넘겨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거짓말로 그들이 이미 떠났다고 말한다. “빨리 그들을 쫓아가 보시오” 그녀는 성주의 사자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그들을 따라잡을지도 모르오”(2:5). 그 결과, 성주의 부하들은 성벽 밖으로 그들을 찾으러 나가게 된다. 사실 그 정탐꾼들은 지붕 위의 아마 줄기 아래에 숨어 있었다.
정탐꾼들이 떠나기 전에 라합은 그들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한다. 우리는 왜 그녀가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느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그 전에 들었던 것이다. 홍해를 가르신 분. 그녀가 살고 있는 바로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했던 분. “우리가 [너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녹았으며, 두려워했다”라고 라합은 말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 하늘에서, 그리고 아래로 땅에서 하나님이시니라”(2:11).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실 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그들은 이에 동의했다. 여호수아 6장에서 우리는 정탐꾼들이 그들의 약속을 지켰음을 볼 수 있다.
성경 이야기 속에서 이 장은 라합을 신약에도 등장시킬 만큼 충분히 중요했다. 왜일까? 히브리서 11:31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는다.
그녀의 믿음. 우리의 질문에 대한 이 두 단어로 된 대답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들을 환영했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첫째, 하나님은 그 분의 선하심 가운데에 당신의 백성의 이야기에서 한 여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기로 선택하셨다. 나는 즉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생각한다(요한복음 20).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라합의 상황은 하나님이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약속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기회를 제공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도 라합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가 남성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에덴 동산에서 라합을 거쳐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을 섬기도록 여성과 남성 모두를 향해 계획이 있으심을 볼 수 있다.
둘째, 라합은 여성이라는 성별에 있어서도 그 의미가 있지만, 또한 문화적으로도 그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녀는 가나안 기생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나안 사람들은 약속된 땅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따라서 이스라엘 이야기에서 종종 적대자들로 등장한다. 그들은 “저 아랫 동네 것들” 이다 이 일에 더하여 그녀가 기생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문화적으로 버림받은 자의 전형을 보고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느 동네" 출신인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신 다는 것을 상기 시켜 주는 것이다. 그녀가 문화적으로 거부당했던 그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녀가 당신의 아름답게 펼쳐지는 이야기에 기꺼이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셨다.
셋째, 그녀의 믿음. 그녀의 믿음은 그녀를 위대한 인물들 중 일부인 노아, 아브라함, 사라, 모세, 기드온, 다윗, 사무엘 등과 함께 나오게 했다. 그녀의 성별, 민족성, 의심스러운 직업이 그녀의 듣고 믿는 능력을 무효화시키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듣고 믿었으며, 그녀의 행동은 그녀의 믿음을 반영했다.
여호수아 이야기는 굳이 2장이 없이도 유지 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라합의 교훈을 놓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문화적 내러티브의 어느 측면에 서 있든지,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 대한 격려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어지는 교훈으로 받아들인다. 세상의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일회용으로 또는 종속적인 것으로 간주할 때, 우리는 그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하나님 크기의 믿음이 이 하나님의 이야기에 계속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수적 요소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